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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내춤기행, 동해안 별신굿, <세존굿> ‘중춤’은 전통춤 ‘승무’와 연관성이 있을까?'세존거리'의 중춤 한국의 굿에서 불교적인 연관성을 지닌 굿거리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진도씻김굿의 <제석거리>, 서울·경기도당굿에서 <불사거리>, <제석거리>, 황해도굿의 <제석거리>, <칠성거리> 등이 고깔을 쓰고 불교적인 의식을 연행한다. 동해안별신굿에서는 <제석거리>와 <세존거리>가 있다. 제석신은 재복을 관장하는 신이며, 세존굿은 고깔을 쓰고 ‘중춤’을 추고 ‘바라춤’을 추지만, 아이의 잉태, 출산, 성장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시고 있어 명칭과는 달리 많이 변이된 내용으로 전개된다. 또한 흔히 제석과 세존은 같은 신으로 혼용하기도 하지만 동해안별신굿에서는 굿거리가 나누어져 있다. 제석거리의 연행구조는 6단계의 기본구조로 푸너리춤, 청보무가와 춤, 거무춤, 토구름춤, 어포춤, 축원민요, 수부물림 등으로 연행하였다. 세존거리의 연행은 변형구조로 되어 있어 연행이 조금 다르다. 푸너리춤에 이어 제마수장단의 당금애기 서사무가와 춤(1시간30분), 드렁갱이와 삼오동(삼오장)장단에 중춤, 바라춤을 추고 마쳤다. 세존거리는 변형구조로 되어 있어 연행이 조금 다르다. 부채와 고깔을 들고 푸너리춤에 이어 제마수장단의 당금애기 서사무가와 춤(1시간30분), 드렁갱이와 삼오동(삼오장)장단에 중춤, 바라춤을 마친다. 이어서 무악이 계속되는 동안 무언극을 한다. 노승이 부채를 쥐고 자다가 긴 하품을 하고 이를 잡아먹는 시늉, 양치질과 세수하고 화장하기, 거울보기 허리띠 풀어 짚신 엮기를 한다. 무언극이 끝나면 무녀는 일어나서 다시 빠른 춤을 추다가 바라(제금)을 들고 춘다. 특히 ‘중춤’은 <세존거리>에서만 추는 춤이다. 이번 신암별신굿에서 세존거리는 원로 무녀 김영숙 무녀와 김용택 양중이 연행하였는데 연행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무녀가 당금애기 무가를 마치고 활옷과 고깔을 쓰면 양중들이 드렁갱이장단으로 빠른 분위기를 바꾼다. ①무녀는 활옷장삼자락을 좌우로 뿌리면서 왼쪽으로 한 바뀌, 오른쪽으로 한 바뀌 돈다. ②앞을 향해 엎드려 한동안 꿈쩍하지 않고 마치 승무의 복무(伏舞)처럼 움직임이 없이 부동자세이다. ③ 양중이 삼오동 1장단(♩×5×3박 -첫박 1징)에 "중아 중아 너 어디~”하고 사설무가를 하면 무녀는 몸을 꿈틀이며 고개를 조금씩 흔든다. ④ 엎드린 채 장삼을 한 팔씩 돌려 머리 위로 올렸다 내리고 좌우로 흔든다. ⑤ 다시 좌우로 장삼을 흔들어 머리 위로 한 팔씩 얹어 모은다. ⑥ 삼오동 2장단(8박중 1,2,3,5박-불규칙적 징)에 고개를 약간 들고 다시 한 팔씩 휘감아 모리에 얹었다 내리고 양팔을 좌우로 ∞자로 흔든다. ⑦ 고개를 들고 다시 한 팔씩 돌려 머리 뒤로 얹었다 내리고 반대 팔로 반복한 다음 양팔을 동시에 휘저어 머리에 얹었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⑧ 일어서서 장삼을 휘저으며 왼쪽으로 450도 돌아 우측방향을 향해 앉아 한 팔씩 흔들어 얹었다 내리고 양팔 동시에 흔들어 얹고 뿌린다. ⑨ 일어서서 양팔을 흔들며 오른쪽으로 540도 돌아 좌측을 향에 앉아 반복해서 한 팔씩 흔들고 얹고 양팔을 흔들 뿌린다. ⑩ 다시 일어서서 오른쪽으로 돌며 오른팔을 들어 뿌리고 왼쪽으로 돌며 왼손 뿌린다. ⑪ 장삼을 좌우로 크고 빠르게 흔들며 앞을 향해 전진후진 하면 삼오동3장단(빠르고 규칙적 징)에 좌우치기, 상하치기, 감아치기로 빠르게 흔든다. ⑫ 뒤로 돌아 굿당을 향해 좌우치기, 감아치기, 몰아치기, 비빔무관, 도리깨무관 등 손신무관으로 빠르게 뛰며 다양한 손춤을 춘 다음 천천히 왼쪽으로 돌아 장삼을 서서히 흔들고 앉는다. ⑬ 두나백이장단(징을 2번씩)에 앉아서 하품을 하며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끄덕끄덕 흔든 다음, 부채를 내리고 있다가 다시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며 존다. ⑭ 양치질 시늉과 물을 손으로 떠 입에 넣고 입 헹구기와 품기 두 번 시늉. ⑮ 세수하고 비듬 털고 머리 다듬기 ⑯ 부채거울 보며 얼굴 매무새 하고 좋다고 끄덕이기 ⑰ 가슴 띠를 앞으로 돌려 낸 다음 발가락에 끼고 엮어 짚신삼기 시늉 ⑱ 장단을 멈추게 하고 제주를 불러 발에 맞춰 보이고 짚신값을 부채에 받는다. ⑲ 두나백이2장단에 굿당을 향해 장삼을 흔들며 두 바퀴 돌아 굿당을 향해 절을 하고 마친다. ⑳ 장단이 멎으면 활옷을 벗는다. 이어서 양중이 장고만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원왕생 왕생~어떤 스님 꽝새들고 어떤 스님 죽비들고 어떤 스님 바라들고~” 하면서 염불소리를 하면 활옷을 벗고 고깔을 쓴 채 쾌자와 가슴띠 매무새를 다듬는다. 다시 굿거리장단으로 꽹과리, 징, 장고, 태평소가 합주하면 무녀가 손춤을 춘다. 왼손 들고 오른손 뒷짐지고 제자리에서 지숫고 반대로 지숫고 전진하였다가 왼쪽으로 돌아 굿당을 향하여 양손을 천천히 흔들며 허튼춤을 춘다. 다시 천천히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 양손을 들어 흔들다가 내려 앞뒤로 여미고 제자리에서 어른다. 다시 좌우세로 천천히 흔들고 전진하였다가 왼쪽으로 돈다. 덩덕궁이장단으로 빨라지면 팔을 들고 자진 허튼춤을 추며 돌고 제자리에서 어르고 좌우세를 한 다음 바라 앞에 엎드려 좌우로 팔을 흔든다. 바라를 쥐고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들고 양팔을 벌려들고 바라만 휘돌리고 한쪽씩 바라를 휘돌린다. 바라를 친다. <세존거리>와 연행하는 <도둑잡이거리>의 희극적인 재담과 ‘병신춤’ 마을 제관을 불러 ‘상제’라고 칭하며 뒤에 앉힌다. "명밥도 먹이고 복밥도 먹입시다. 우리 상제 명과 복을 받게 해주어야 하는데 일어나 먼저 춤을 추어야 복 받으니 춤을 추세요.” 자진모리를 치나 제관이 허튼춤을 덩실덩실 춘다. 무녀가 쓰고 있던 고깔을 벗어 씌워주며 고깔값을 받는다. 이어서 활옷도 입히고 중바랑도 어깨에 걸치고 꽹과리를 주고는 마을에 가서 시주해 가지고 오라고 주민들에게 보내고 중염불을 부른다. 꽹과리에 시주돈을 모아오면 염불축원을 마친다. 양중이 "시주 해왔다! 거기 앉으소!” 해놓고 "이 동네 도둑났다!” 하면 양중대표가 나와 <도둑잡이>를 진행한다. 이처럼 양중들이 굿거리 중간에 희극적인 놀이로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곤반’이라고 한다. <도둑잡이거리>는 마을의 재물을 보호하고 손재를 막기 위한 남무들의 놀음거리로 세존굿에 이어 연행하기에 <세존곤반>이라고도 한다. 도둑잡이에 나오는 반주는 기악합주로 굿거리, 휘모리, 단오리이며, ‘병신춤’에는 타령장단을 연주한다. 18시 50분 먼저 양중대표가 등장하여 "났다 났다. 신암리 대동에 중도둑이 났다. 우리 얼사촌부터 불러보자. 부산의 칠암리에 사촌아! 서울에 사촌아!.....”하면 반주하던 양중이 하나 둘씩 앞으로 나오고 장고와 징 반주자만 남는다. 다함께 창부타령을 돌아가며 노래한다. "자! 도둑 잡으러 가자! 중아!”하고 주민들이 구경하는 장내로 모두 퍼져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양중 하나가 징채를 들고 앉아 있는 중 앞에 절하듯이 물구나무 서다가 털썩 엎드린다. 일어나 병신춤을 춘다. "도둑잡다가 병신됐다!” 양발 ‘안짱다리춤’, 징채를 흔들며 ‘곰배팔이춤’을 춘다. 다른 양중이 징채로 중의 고깔을 쳐 벗겨버린 다음 엎드려 절을 하다가 일어나 안짱다리와 ‘뻗정다리춤’을 춘다. "풍 맞았다. 한방에 가서 침 맞아야 된다!” 또 다른 양중이 중 앞에 물구나무서기로 절을 하다가 일어나 ‘얼굴병신춤’으로 ‘할개눈춤’과 ‘합죽볼춤’로 표정연기를 하면서 ‘어깨삐뚤춤’을 곁드린다. 또 다른 양중이 징채를 받아 주민들 앞으로 뛰어가 넙죽 엎드려 물구나무서기로 절을 한 다음 ‘곱추춤’을 추며 시주돈을 달라고 한다. 계속해서 양중들이 차례로 시줏돈을 받아오면 중한테서 바랑을 받아 들고 나와 도둑맞은 물건을 하나씩 꺼내며 "아이고! 큰일 났다!” 하면서 쌀 헹구는 조리를 꺼낸다. "이건 절의 은저다!” 조리를 중의 고깔을 벗기고 어깨에 얹힌다. 이번엔 "길다!” 하면서 밥주걱을 꺼내들고 "절간 똥간에서 밑 닦은 것이다.” "아니다. 은박주 놋박주다” 다시 중의 어깨에 얹는다. 이번엔 바랑에서 물바가지를 꺼내 머리에 씌운다. 사과를 꺼내어 천도복숭아라고 하며 노인회회장 주라고 전한다. 귤을 꺼내 이건 알이다. 홍두깨를 가까스로 꺼내들고 갖은 재담들을 늘어놓으면서 굿판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다시 바랑에 주어 담아놓으면 무녀가 나와 술비소리를 하면서 중을 춤추게 하고 활옷을 벗게 하고 굿당에 재배하게 하고 마친다. 무녀가 수부잔을 굿상에서 들고 나와 사자풀이채에 맞춰 수부물림소리를 하고 술잔을 굿당 밖에 뿌리고 마친다. <세존거리>의 ‘중춤’과 전통춤 ‘승무’, 탈춤 ‘노장춤’의 근원성이나 연관성 이번 동해안별신굿 기행에서 필자가 주목한 굿은 <제석거리>와 <세존거리>였다. 그것은 우리 전통춤의 백미(白眉)라고 일컫는 ‘승무’와의 연관성이 있을까하는 문제였다. 승무는 춤사위의 멋과 춤가락의 흥을 고루 갖춘 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무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입증자료나 변천과정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실정이다. 승무의 유래에 대하여는 불교의식무 기원설과 지족선사를 파계시킨 황진이의 무용설, 파계승의 번뇌에서 기원한다는 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설, 그리고 가면극의 노장 과정에서 유래한다는 설 등 그 기원설이 구구하나 어느 것이 확실하다고는 단정하기가 쉽지는 않다. 승무와 불교의식무의 법고춤은 그 기법이 같고, 승무의 춤사위 구성이 불교의식무의 춤사위들과 관련 있다는 점, 반주음악이 염불로 시작되는 점, 몸과 발의 놀림, 장삼을 사용하는 법 등으로 승무가 불교와 법고춤에서 그 기원을 이루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숭유억불 정책에 영향을 받아 종교예술에서 민간예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민간예술로 자리잡아가며 점차, 승무는 변천과정을 거쳐 조선조 말에 이르러 하나의 예인춤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갖가지 형태로 발생되어지는 것이 전통예술의 특질이기 때문에 어느 것으로부터 기원되었으며, 그 최초의 형태는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를 단정짓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식무 기원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만, 어떻게 하여 기원과는 전혀 다른 예인춤의 대표작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의 전이과정을 밝혀야 할 과제가 남는다. 굿은 아주 오랜 한국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의 삶 속에 전승해온 춤으로 승무의 전승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이나 연관성이 있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특히 승무의 시작에서 보이는 복무(伏舞)와 같은 중춤의 시작, 고개들고 장삼춤, 일어서서 추는 장삼춤 등의 춤사위의 유사성, 제석거리와 세존거리라는 불교관련 명칭, 고깔을 쓰고 장삼을 입은 무복과 무구 등에서 승무와의 유사성도 보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한국 탈춤에 나타난 파계승들의 노장춤의 춤사위 구조와도 유사성이 많았다. 노장춤에서도 복무와 고개 들고 장삼춤, 일어서서 소무들 향한 장삼춤들과 세면하는 무언동작까지도 세존굿의 중춤과 무언춤이 상호간 유사성이 많은 것은 단순한 우연을 뛰어넘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동해안별신굿 춤기행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1976년 10월17일, 제7회 동해안 무속무용발표회, 서울예술고등학교 강당에서의 굿판이었다. 그러니까 40년 전으로 돌아가 고 정병호(중앙대, 춤평론가)교수가 조직한 한국전통춤연구회가 전국의 전통춤 명인과 민속단체를 초청하여 서울무대에 소개 시키던 작업에 함께 참여하면서 봤던 당시 김석출 일가가 보여줬던 동해안별신굿의 면모와 전승을 다시 재현하는 굿판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고 김석출과 그 가족들 중에 큰 따님인 김영희 보존회장이 이제는 고령의 보유자가 되었고, 둘째와 셋째 딸과 손자 내외 세대가 굿의 주역을 맡고 있는 것도 새로웠지만, 특히 오래 전일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굿거리는 역시 세존거리였다. 당시에도 전통춤 ‘승무’와 탈춤의 ‘노장춤’의 춤사위와 마임춤들의 유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이번 굿판에서도 똑같은 감흥을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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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의 지역춤, 광주·전남지역춤지역춤이란 특정지역의 생태문화적 배경 속에서 지역민들에 의해 공통적 특징을 형성하면서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춤을 말한다, 한국의 전통춤은 지역마다 색다른 지역춤들이 전승되고 있다. 한국의 지역춤을 형성하게 된 생태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전국을 영남과 호남, 강원과 충청, 수도권과 북한 지역춤 등으로 나누어 대표적인 춤 종목과 특징을 연재한다. 기후와 지리환경에 따라 발달한 농경민속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국토 구조로 인해 위도에 따라 기후환경에 차이가 있다. 대체로 남부지역은 북부지역에 비해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로, 삶이 여유롭고 느긋하여 속도가 빠른 춤이나 도약하는 춤보다는 느리지만 멋스러운 민간춤이 발달하였다. 지리적으로 평야지역은 풍농으로 인한 풍요롭고 흥겨운 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교통이 발달하여 문화의 교류가 빈번하고 전파력이 좋아 춤의 종류도 다양하다. 평야지대로 갈수록 폭넓게 움직이는 ‘수평춤’이 많고, 산악지대는 ‘수직춤’이 많다. 수직춤이 발로 뛰어오르는 도약과 무릎 굴신이 특징이라면 수평춤은 발의 옮김과 손을 넓게 펴들고 추는 춤사위가 특징이다. 광주·전남지역은 따뜻한 남쪽지방에 위치하고, 산보다 평야가 많아 풍요로운 농경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농악과 농요를 비롯한 농경민속춤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농경지를 향한 ‘앉은춤’, ‘엎드린춤’, ‘굴신춤’ 등 대지지향적인 ‘하향춤’이 많으며, 주로 손으로 이루어지는 농경생활은 농경모의적인 손춤, 팔춤, 곡선춤이 발달했다. 북쪽지역의 도약춤과 대비되는 남쪽지역의 춤 특징인 ‘답지(踏地)춤’을 비롯하여 ‘평걸음’, ‘지숫는 춤’, ‘양팔 들사위’ 등 수평춤의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도약을 억제하는 평면적인 춤과 빠르지 않으면서 흥이 넘치는 손춤, 내면적인 멋을 가진 승무와 살풀이춤, 입춤 같은 예인들의 춤이 주로 전승되고 있다. 세시풍속에 따른 추석문화권춤 세시풍속을 지역문화권으로 나누는 민속학계의 통설은 북부지방의 단오문화권, 중부지방의 단오·추석문화가 복합된 백중문화권, 따뜻한 서남지역 평야지대의 추석문화권으로 구별한다. 민속학자 김택규는 단오권이 ‘도당굿-입체적·동적’, 복합권이 ‘별신굿-평면적·동적’, 추석권이 ‘당산굿-평면적·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춤문화권 역시 단오권은 수직적·입체적·동적인 춤, 추석문화권은 수평·평면·정적인 춤, 복합권은 그 중간으로 수직·수평과 입체적·평면적인 정중동의 춤이다. 그중 호남지방은 추석문화권으로 넓은 평야가 있는 곡창지대에서 풍년을 가져다 준 천신과 지신에 감사드리며 그 기쁨의 축제를 벌이는 지역이다. 이들은 천신보다 지모신을 더 숭배하는 대지지향적 하향춤과 땅을 자근자근 밟는 강강술래의 답지춤, 수평적인 양팔사위와 여밀사위 등의 하향춤을 많이 춘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광주·전남지역춤은 부드럽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느린춤’, ‘곡선춤’, 아래로 여미는 ‘하향춤’과 손목놀림이 많은 ‘손춤’이 발달하였고, 발걸음춤으로는 부드럽게 대지를 밟아주는 ‘답지(踏地)춤’이 발달하였다. <정범태(2006), 한국백년1, 서울: 눈빛출판사, pp.12~13.> 광주·전남지역 농악춤 한국의 농악권은 호남 우도농악, 호남 좌도농악, 경기 및 충청농악, 영동농악, 영남농악 등 다섯 지역으로 나뉜다. 호남지방은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우도농악과 좌도농악, 두 가지 유파로 분류된다. 호남 우도농악은 익산에서 목포로 이어지는 평야지대로 쇠와 장구춤을 중시하고 가면잡색놀이가 특징이며, 당산제와 마당밟기를 중심으로 부포상모춤, 고깔소고춤이 발달하였다. 장구가락이 아주 발달하였으며 윗놀이보다 밑놀이가 발달하였고 악기별 개인놀이가 발달하였다. 이에 비해 호남 좌도농악은 전주, 남원, 여수로 이어지는 산악지대로 쇠와 장구놀이를 중시하고 잡색탈춤과 동물 등 배역놀이가 발달하였으며, 고깔보다 전립을 쓰는 채상소고춤이 발달하였다. 우도농악보다 가락이 빠르고 윗놀이가 발달하였으며 집단적인 진풀이가 특징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 걸립패들의 농악은 곡창지대에서 판굿에 대한 후한 쌀보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능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탈춤 종목이 독립적으로 발달되지 못하고 잡색(雜色)들의 가면극놀이가 농악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소리춤의 대표 <강강술래> 소리춤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르를 말하며 대표적으로 강강술래가 있다. 남성들이 추는 소리춤과 여성들이 추는 소리춤으로 나눌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여성소리춤이 많이 발달했다. 기본적으로 원무 형식의 집단춤이지만 놀이적인 것이 혼합된 대형변화 형식도 많다. 전라남도 해안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강강술래에는 고사리 꺾기, 청어엮기와 풀기, 덕석몰이, 바늘귀 꿰기, 남생아 놀아라, 쟁기질놀이, 문지기놀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강강술래는 일반적으로 여성소리춤으로 분류하고 있다. 남녀유별(男女有別) 사상이 깊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춤에서도 이런 현상이 깊게 투영되었다. 임진왜란 시기 일본해군의 야간 침투를 방어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모닥불을 지펴놓고 부녀자들이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였으며, 그 시간동안 군사들은 잠을 자고 대낮의 전투를 대비했다는 이야기가 강강술래의 기원설로도 전해지고 있다. 물론 현재도 전남 여러 지역의 강강술래가 여성소리춤으로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신안 비금도 등지에서는 남녀가 함께하는 강강술래가 전승되고 있기도 하여 지역에 따라 남녀소리춤으로도 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매방의 승무와 살풀이춤 이매방(1927~2015)은 전남 목포출신으로 어린 시절 집 옆의 목포권번에서 함국향이라는 권번장의 가르침으로 기방춤 기본을 익혔고, 이대조(검무, 승무), 박영구(승무, 법고), 이창조(검무)등으로부터 전통춤을 다졌고, 6·25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해서도 춤을 계속하였다가 상경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 제97호 살풀이춤(1990) 두 종목의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평소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지”라는 말씀을 하였으며, 여성보다 더 고운 춤을 춘다는 평을 받았다. ‘하늘이 내린 춤꾼’, ‘국무(國舞)’등의 칭호를 붙인 『이매방화보집』(이병옥·김영란 집필, 2011)을 봉정할 만큼 이수자들만도 수백 명에 이르며 명무제자(너무 많아 명단 생략)들도 수두룩한 범한국적인 최정상의 춤꾼이었다. 한진옥류 검무와 재인춤 광주·전남지역 명무들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타지방에서 춤사범이나 춤꾼으로 생애를 보낸 이들(강태홍, 박지홍, 김계화, 이매방 등)이 많은데, 이에 비해 끝까지 고향을 지킨 명무에는 한진옥(1911~1991)을 꼽을 수 있다. 한진옥은 ‘못 추는 춤이 없는 춤의 팔방미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그가 선대 명무였던 이장선(굿거리·바라무·살풀이·부채춤·승무 등), 신갑도(팔도 검무), 이창조(검무, 창), 장판개(창) 등으로부터 다양한 춤과 소리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은 많았었는데, 대부분이 떠나자 "지방에 살다 보니 알아주던 사람도 떠나가고 남는 건 회한뿐”이라며 "백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끼니 간 곳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었다. 자칫하면 맥조차 끊길 뻔했던 스승의 ‘팔방춤’의 맥을 제자 김다복, 임순자가 잇고 있을 때 지역의 무형문화재 지정 필요성을 공연 해설 때마다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떠나고 김자연 등이 겨우 맥을 있고 있어 안타깝다. 속히 지역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의 맥을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과 허튼춤 ‘1인 창무극’의 선구자로 알려진 공옥진(1931~2012)은 곱사춤, 병신춤, 원숭이춤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이 시대의 광대춤꾼이었다. 전남 영광 출신으로 남도 판소리의 대가였던 아버지 공대일에게 창을 배웠다. 1945년께 조선창극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고 고창 명창대회에서 장원에 입상했다. 1973년 남도문화제에서 '1인 창무극'을 창안하였고 1978년에는 익살맞은 병신춤과 판소리 창이 곁들어진 '1인 창무극'을 선보였다. 당시 문화재위원이었던 정병호(중앙대교수)에 의해 발굴된 공옥진의 특이한 춤들은 병신춤 외에도 곱사춤, 원숭이춤 등 동물을 모방한 춤으로 천연덕스러움과 청승맞음이 담겨있었으며, 『병신춤을 춥시다』(1982, 문순태 저)로 공옥진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세상이 알려지기도 했었다. 당시 ‘1인 창무극’ 공연을 봤던 필자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눈물범벅으로 울었다가 배꼽 빠질 지경으로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장애인 단체의 거센 반발로 병신춤은 사리지고 동물 모방춤만 추게 되었으며, 그 후 뇌졸중으로 오래 고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전남 무형문화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무대에 서는 투혼을 보여주었고, 필자가 해설을 했던 제 71회 <한국의 명인명무전>(국립극장)에서도 살풀이춤으로 생애 마지막 무대를 선보여 커다란 감동을 주고 떠났다. 박병천의 진도북춤과 씻김굿 진도북춤의 명인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 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였던 박병천 명인(1932~2007)은 무용계에서는 ‘진도씻김굿’보다는 ‘진도북춤’ 명인으로 추앙받았으며, 모두가 ‘박병천의 진도북춤’이라고 할 정도로 대표명칭이 되었다. 박병천 명인의 춤바디도 우리가 흔히 아는 곱디 고운 기방계춤이나 고고하고 담백한 재인계춤 바디가 아닌 독특하고 투박한 민간계 춤바디를 지녔다. 박병천 명인이 보유한 예능 중 최고의 걸작은 ‘구음시나위와 징(鉦)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전통춤꾼들은 앞을 다투어 살풀이춤이나 입춤 등의 반주곡으로도 많이 쓴다. 그런데 필자가 본 많은 공연무대에서는 구음소리만 들리고 춤이 묻혀 버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박병천의 구음소리가 워낙 심금을 울리니까 관객들은 춤보다 소리 감흥에 매료되어 춤이 눌리는 분위기가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춤의 기량과 끼가 박병천 구음소리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춤꾼이 아니면 소리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니 이 시대의 명인 중의 거장임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광주·전남지역은 지리환경의 영향으로 좌·우사위(수평적, 평면적)가 많고 ‘땅기운이 온몸으로 지피는 춤(대지지향, 하향춤)과 땅을 밟는 춤(답지춤)’이 특징이다. 또한 넓은 평야와 농경지가 많아 농악(우도, 좌도농악)과 소리춤(강강술래)이 발달하였다. 추석 때가 되면 햇곡식과 햇과일의 추수를 천신과 지신에 감사드리는 추석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은 육자배기토리의 노래와 시나위 선율이 발달한 관계로 춤도 흩어지다 모아진 산조(散調) 음악의 느린 장단에서 점차 빠른 장단을 넘어가며 자지러질 듯 혹은 숨죽일 듯 손사위를 펼치는 ‘산조춤’과 구구절절 맺힌 한과 삶의 애환을 담았다가 차원 높은 신명으로 승화하는 ‘살풀이춤’, 그리고 농경사회의 영향을 받아 민초들의 고단함이 녹아있으면서도 풍요와 신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허튼춤’이 발달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에 판소리와 노동요 등이 지정되면서 광주·전남지역의 무형문화재에 판소리와 고법 12종목, 농악 6종목, 민요와 노동요가 15종이나 지정되어 가히 예향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춤 분야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호남출신 이매방 명무를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 보유자로 지정하였을 뿐이며, 광주·전남지역에서는 한 종목도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아 지역춤들이 소멸될 위기에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병옥은 전통예술 연구가, 용인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하다 정년퇴임 종신 명예교수이다. 한국무용사학회와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경기도와 서울 시문화재위원을 거쳐 현재 이북오도청 문화재위원이다. 1985년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 무용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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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9)<br>박동영 명인의 '오북춤' 춤사위밀양백중놀이 매년 음력 7월 보름경에 경상남도 밀양 지방에서 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유래한 성인남녀놀이이다. 머슴들이 7월 보름경 진(辰)에 해당하는 날(용날)을 택하여 지주(地主)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연유한 두레굿이다. 이러한 놀이는 두레먹기·호미씻기·호미걸이라는 명칭으로 중부이남지방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밀양에서는 이날을 흔히 ‘머슴 날’이라고 하며, 이날의 놀이를 ‘꼼배기참 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지역은 농경지가 많아 농사가 잘 되고 살기가 좋았기에 촌락공동체로서의 농경의식이 발달하고 시장이 활성화 되어 자본이 모이는 곳이다. 그만큼 밀양은 양반과 천민의 차별이 심한 곳으로 천민들이 풍물에 의지하여 신명나게 놀면서 울분을 해소하였던 것 또한 지금의 백중놀이를 형성함에 있어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기예능보유자로 하보경(하보경, 보유종목 : 양반춤·법무춤)과 김상룡(김상룡, 보유종목 : 오북춤)이 인정되었으나, 1997년 하보경이 작고하여 현재는 김상룡과 하용부만이 남아 있다. 박동영은 경남 밀양 출신, 40년 넘게 춤판을 휘젓는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이다. 1979년 밀양민속예술보존회 가입하면서 밀양백준놀이 전승활동 전개, 하보경 명인에게 양반춤,범부춤, 북춤 전수, 김타업에게서 쇠가락, 장구가락, 병신춤 전수, 김상용에게 오북춤 전수 받았다. 2002년에 '상쇠'와 '오북춤'으로 밀양백중놀이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99년 제1회 밀양시민대상(예술 부분) 수상, 1989년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보존회장을 맡으며 전승활동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밀양 지역 무형문화재 발전을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는 포부를 품고 산다. 기예와 함께 기록과 사진이 그의 장기이다. 밀양이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박동영(朴東暎, 1952~ ) 밀양 출생 1981년 밀양백중놀이 전수장학생 선정 2002년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상쇠와 오(五)북춤)지정 2016년-2020년 밀양백중놀이보존회장 취임 2005년 경상남도무형문화재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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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와 예능보유자 박동영'밀양백중놀이'는 매년 음력 7월 보름경에 경상남도 밀양 지방에서 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유래한 성인남녀놀이이다. 박동영은 경남 밀양 출신, 1979년 밀양민속예술보존회 가입하면서 밀양백준놀이 전승활동 전개, 하보경 명인에게 양반춤,범부춤, 북춤 전수, 김타업에게서 쇠가락, 장구가락, 병신춤 전수, 김상용에게 오북춤 전수 받았다. 2002년에 '상쇠'와 '오북춤'으로 밀양백중놀이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99년 제1회 밀양시민대상(예술 부분) 수상, 1989년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전승활동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박동영 예능보유자는 보존회장을 겸하면서 밀양 백중놀이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연합회장까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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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판 '백중놀이'의 초창기 모습, 병신춤기회송림에서 촬영된 밀양백중놀이 1982년판 백중놀이의 초창기 모습이 그대로 담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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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오북춤)' 의 대가 김상용김상용 옹(金尙龍,1916~2004)은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였으며 1935년부터 밀양보본계 원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에 밀양국악협회 부 회장이 되었고, 1980년 밀양민속예술보존협회 창립회원의 한 사람으로 부회장을 거쳐 1982년 에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86년에는 밀양백중 놀이 보유단체가 인정되면서 밀양백중놀이보존 회의 회장이 되었다. 1982년에 전수교육을 위한 악사로 선정되었고 1986년에 이수조치 되었으며 1987년에 오북춤과 농요 로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83년에는 경남 무형문화재 제7호 감내게줄당기기의 동부줄도감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기도 하였 다. 1977년에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병신춤으로 개인상을 수상하였 고, 1981년에는 개천예술제 민요경창부문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1986 년에는 마산시민의 날 민요·판소리 경창대회에서 입상하였다. 1935. 01 ~ 밀양백중놀이보존회 전신인 ‘밀양보본계’ 회원으로서 故 하보경 선생께 '병신춤' 등 '밀양백중놀이' 전수1970.01.01 한국국악협회 밀양시지부 지부장(17대) 역임1981.10. 0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교육조교 선정1987.07. 0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오북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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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金尙龍,)씨 88세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金尙龍, 향년 88세)씨가 2004. 5. 3(월), 06:14 밀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ㅇ생년월일 : 1916. 7. 27ㅇ빈 소 : 한솔병원 장례식장 2층(경남 밀양시 내이동 184번지 ☎ 019-5511-3767/박동영)ㅇ영 결 식 : 2004. 5. 6(목), 11:00ㅇ장 지 : 경남 밀양시 부북면 월산리 선영 ㅇ주요경력- 1935. 1 ~ 밀양백중놀이보존회 전신인 ‘밀양보본계’ 회원으로서 故 하보경 선생께 병신춤 등 밀양백중놀이 전수- 1970. 1. 1 한국국악협회 밀양시지부 지부장(17대) 역임- 1981.10. 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교육조교 선정- 1987. 7. 1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오북춤) 인정ㅇ가족사항 : 부인, 5남 3여 ※ 밀양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낸 농사꾼들이 음력 7월15일경 지주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로서, 농사일에 직접 종사하는 농사꾼들의 어려운 농업노동이 전체 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음. 문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전화 042-481-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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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인간문화재 권경도 여사 별세, 향년 93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명예보유자 권경도(93) 여사가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1955년 하보경·김타업 전 보유자에게 병신춤을 배웠고, 1970년 백중놀이보존회의 전신인 밀양국립협회를 창립한 인물이다. 1980년 전국민속놀이경연 국무총리상 수상했고, 2002년 밀양백중놀이의 핵심 기예능인 난장이춤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한평생 밀양백중놀이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힘써왔다.경남 밀양시 북성로 7길 66 밀양농협장례식장 2층 VIP실, 발인 25일 오전 8시20분.밀양백중놀이는 농사일을 끝내고 머슴들이 음력 7월15일께 용날을 선택해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를 일컫는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한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 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부른다. 병신춤과 오복춤은 밀양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배김내사위는 이 놀이의 주된 춤사위로 춤동작이 활달하며 오른손과 오른발, 왼손과 왼발이 같이 움직이는 동작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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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장사익, "사람은 만나야!"노래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사랑을 받는 가수들에게는 목소리가 가장 큰 매력일 것이고 그런 사람을 수식하는 말로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가인, 노래손님이라는 가객, 노래왕이라는 가왕 등의 애칭이 있는데, 그런 등급을 떠나서 진정으로 가수에게 붙여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은 소리꾼이 아닌가 한다. 원래는 판소리를 하는 분들에게 붙이는 호칭인데, 대중가수에도 이런 호칭을 붙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넘치는 분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장사익 씨를 들고 있다. 아마 여기에 시비를 걸 분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 외롭고 슬프고 힘들 때를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노래로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소리꾼 장사익, 해마다 전국을 돌며 노래로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던 장사익 씨가 코로나19 사태로 몇 년 동안 우리를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10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4년만의 음악회다. 장사익이 벌일 소리판의 타이틀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였다. 타이틀을 접하는 순간 문득 간절하게 장사익 님, 사람 장사익을 만나고 싶어졌다. 장 선생과는 사람과 사람으로 몇 번 만난 귀한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국악신문에 그 분 만나서 4년만의 음악회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제의하고는 다짜고짜 연락을 취해 장 선생 집을 찾았다. 원래는 아무리 전직이라고 하더라도 기자들에게 집을 잘 공개하지 않는데, 마침 세검정 근처에 있는 집으로 바로 오란다. 비탈을 깎아서 조성된 주택가를 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가니 미리 나와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신다. "좋아하는 시인 마종기의 시 중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는 구절이 있어요.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그 싯구절을 읽듯이 외우듯이 그냥 입으로 중얼거리고 흥얼거리곤 했는데, 그동안 여러 분들을 직접 만나지를 못했으니 이 구절처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졌지요. 물길이 트이면 마음도 통하고 그러면 친구도 되고 슬픔도 나눌 수 있잖아요? 그리고 행복해지고요. 제가 흥얼거리는 것이 노래가 되기는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른 지 30년인데, 원래 제 노래가 그런 것이니 이런 노래도 들려드리고 싶고, 그렇게 모두가 사람으로 만나 마음의 물길을 트게 하고 싶어서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도 마침 많이 물러가네요. 오늘 아침 맑은 가을 하늘처럼 말이지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고 좋아하는 노래에 꽂히는 사연이 있다. KBS초대 북경 특파원을 하고 돌아온 1996년에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장사익 공연을 객석 맨 뒤에서 본 순간 나는 이 걸쭉한 목소리, 우리의 북을 반주로 하는 그의 긴 호흡의 영창(詠唱)에 빠져들고 말았다. 힘든 삶을 살다가 4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게 된 그의 삶의 족적도 노래의 감동을 더해주었다. 곧 CD를 사서 매일 밤 10시 회사 일이 끝나고 집까지 가는 동안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차 안에서 듣고 또 들었다. 찔레꽃, 국밥집에서, 꽃, 섬, 그리고 하늘 가는 길 등등. 특히나 하늘 가는 길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으로 나는 몸과 마음을 풀면서 소리꾼 장사익의 영원한 팬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저는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데요, 이번에도 마종기 시인뿐 아니라 서정춘 시인의 "11월처럼”, 허형만 시인의 "구두”, 한상호 시인의 "뒷짐”을 노래로 만들어 부릅니다. 모두 우리들 삶 구석 풍경을 그린 멋진 시들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면 시인들은 시가 곧 노래지요. 그런 시인들의 시를 보면 시인들이 가수고, 저는 목소리를 빌려 그 시를 전해주는 역할이지요. 시인들의 시에는 기가 막힌 시어(詩語)들이 있잖습니까? 그 격조 있고 의미 있는 세계를 노래로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처럼 노래를 좀 못해도(웃음), 좋은 시는 그 자체로도 먹고 들어가잖아요.” 아름다운 시로 장 선생은 미당 서정주의 ‘황혼길’을 예로 든다. 이제 나이가 들어 삶을 마감하는 것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 잠이나 들까”라고 해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그렇게 깔끔하고 진하게 갈음해 줄 수 없단다. 그런 시인들이 온 힘으로 찾아낸 시어들을 노래로 들려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 가는 길’이란 노래도 바로 그런 경지일 것이다. 그의 노래에는 고된 삶이 있고 그 삶을 넘어선 죽음이 있는데, 그 죽음은 힘들고 외로운 삶의 연장이겠지만, 그것을 노래로 넘어서서 모두에게 해원(解寃)의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에게는 한이 많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우리들은 한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부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진도 사람들의 흥타령 같은 것을 들어보세요. 그들은 삶의 모든 힘든 것을 풀어버립니다. 민요는 맺힌 것을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한이 맺히면 원(寃)이 되는데, 이 원을 풀어주는 것이지요. 그게 곧 해원(解寃)입니다. 우리들의 노래에는 이러한 힘이 있지요. 저도 그런 삶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 6월 세계적인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이 인터뷰에서 우륵의 가야금 소리에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경지를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지만 사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에 짙게 담겨있는 이런 정서처럼, 슬프더라도 드러내 슬퍼하지 않는 경지가 곧 우리 민족정서의 본질적인 속성이라면 장사익의 노래에서 바로 그런 정서를 공감하게 한다고 하겠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인의 노래일 터이다. 장 선생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바탕 소나기가 온다. 멋지게 마련한 창 밖 수반(水盤) 위로 수많은 물방울 들이 떨어져 수 십대의 팀퍼니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갑자기 눈 앞의 먼지를 다 씻어가고는 곧 햇살이 나온다. 2004년부터 2006년 미국 순회공연에서 우리 동포들의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게 한 것은 유명하다. 어떤 분이 와서 실컷 울고 나서 속이 시원해졌다며 사이다를 한 박스 마신 것 같았다고 하더란다. 우리 말을 모르는 미국 음악계에서도 "당신 노래의 뜻은 모르겠지만 당신 노래를 들으니 바로 한국의 노래임을 알겠습니다.”라는 반응을 얻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장사익의 노래에서 블루스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는데, 거기에 덧붙여 텁텁한 그의 목소리가 막걸리를 닮았다는 말에 ‘막걸리 블루스’가 아니냐고 했더니 장 선생이 펄쩍 뛴다. "저는 술 담배를 전혀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그러니 막걸리 블루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요. 그냥 우리 한국인들이 편하게 부르던 우리들 식의 노래를 할 뿐입니다” 우리 한국의 노래는 중국이나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바로 막걸리로 대표 되는 술, 그리고 된장으로 대표 되는 식재료와 식습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된장과 마늘과 고추를 즐겨 먹는 한국 사람들, 그들이 나고 자라고 죽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함께 사는 이 땅, 그것이 바로 한국의 노래인 것이리라. 그러기에 우리 전통음악에는 징이 있고 북이 있고 꽹과리가 있고 꺾음과 풀림과 추임새가 있다. 그것들이 바로 한국의 음악이자 한국의 노래이다. 장사익은 대중가수라고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전통의 모든 요소들이 들어있고 녹아있어 대중음악이니 국악이니 하는 구분이 의미가 없다. 그런 그의 소리는 때로는 가슴을 후비고,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간절함 그 자체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 공동묘지에서 하루 30분씩 소리를 질러 목이 트인 데다가 마흔다섯 데뷔 전까지 전자회사·가구점·독서실·카센터 등을 전전하면서 힘들게 살아온 삶의 경험이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소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소리로 인정받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들이 의식을 잘 하지 못하지만 장사익의 노래는 박자가 잘 안 맞는다. 스승으로 모셨던 타악기의 명인 흑우 김대환 선생이 이에 대해 "박자 없는 노래”라고 한 이유이다. 가끔씩 박자가 늘어지고 음정이 덜 올라가기도 한다. ‘찔레꽃’ 노래가 그랬고 ‘섬’이란 노래도 그렇다. 그것은 그의 노래가 자연발생적이기에 그렇다고 한다. 원래 우리들의 민요가 그렇게 생겨난 것 아닌가? 기분에 따라서 흥얼거리다가 거기에 음정이 생기고 박자가 생기는 것이고, 부르다 힘이 들면 잠시 쉬며 가는 것이고... 그런 게 우리 노래다. 엄격한 박자와 음정을 지키는 서양음악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그 자신이 마시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막걸리의 특성 그대로다. 그런 소리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이번 공연에 트럼펫을 하는 원로 음악인 최선배 씨가 나온다. 그 얘기를 하니 눈이 반짝이신다. "우리의 1세대 재즈음악가로 유명한 분이지요. 제가 어려울 때 삶을 이끌어주시고 음악에 눈 뜨게 해주신 분 중 한 분입니다. 1970년대 종로구 공간사랑에서 고 김대환선생과 한국적 프리재즈를 실험했고 그 무렵 김덕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이 그를 이어 태어났습니다. 말하자면 공연예술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홍대 앞 지하 공연장에서 연주도 오래 하셨고요. 선배 음악인들이 먼저 가셨지만 아직 현역의 소리를 내주신다고 해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 장 선생으로서는 이번 공연이 부활의 날개짓이라 할 수 있다. 젊을 때와 달리 잦은 공연과 연습으로 성대가 붇다가 굳어져 좁아지는 등 소리를 내기 힘든 상태가 되어 3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쉬면서 목도 자연스럽게 되살아나 이제 다시 옛날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단다. 다만 높은 고음은 예전처럼 올라가지 않지만 이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금은 편하게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네 삶이 그렇지요. 쉬어가라는 것이지요. 목이 갈라지는 것도 천천히 가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동안 너무 목을 많이 썼기에 그런 것인데, 마침 코로나로 목을 충분히 쉬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장사익 씨는 공연도 공연이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싶은 자리라면 격식을 차리지 않고 찾아가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분 중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기왕이면 돌아가시기 전에 들려드리겠다고 곧바로 달려가 노래로 행복하게 돌아가시게 해 드렸다고 귀띔을 한다. 바로 그의 노래 ‘하늘 가는 길’이 일찍 열어 보인 대로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그 죽음을 담담히 아름답게 맞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라면 장사익 씨의 노래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서로 마음의 물길을 트겠다는 이번 공연은 서울을 시발로 전국을 돌 게 될 것이다. 이제 코로나로 거리두기, 집합 금지 등의 제한이 풀어지면서 야외에서 서로 입을 가리지 않고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부대끼며 슬픔과 기쁨, 용기와 믿음을 나누는 것이 우리들의 세상이었기에 장사익의 소리, 노래가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사는 세상다운 세상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장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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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백중놀이, 권경도 할머니의 익살스런 범부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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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악계 별들 37: 서암 권승관 선생한명희/이미시문화서원 좌장 세상살이 어찌 보면 장강의 물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통상 우리는 표면만 보며 그 대상을 이해하기 마련이다. 동시에 흘러가는 물줄기련만 그 저변에 흐르는 물살은 알 길이 없다. 우리 인생살이도 이와 같아서 세상에 널리 회자되는 인물만 기억하고, 초야에 묻힌 인재는 비록 그가 보옥 같은 존재라도 좀처럼 알아채질 못한다. 전통음악계에도 그 같은 사례가 있다. 그분만큼 국악을 사랑하고 그분만큼 국악을 몸소 익히며 심취한 예가 드묾에도 불구하고 중앙 한악계에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초야의 보옥을 알아볼 정보나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모든 문화예술 분야가 대동소이했지만, 전통음악 역시 일제 문화말살정책에서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바로 그 기사회생의 생기가 움트고 뿌리내린 텃밭이라면 누가 뭐라든 남도의 예향 광주 고을이라 하겠다. 여유 있는 집안 자녀들이 일본 유학을 거치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전통예술의 소중함과 그 남다른 진가를 선구적으로 터득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일제 암흑기에도 광주 유지들은 유달리 국악을 사랑하고 국악을 육성하려고 애써 왔다. 고장의 몇몇 명인 명창들을 찾아가서 직접 배우고 교유하면서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미음물을 떠먹이며 원기를 회복시켜 주듯, 살뜰히도 보듬으며 국악의 명맥을 이어냈다. 바로 그 같은 고마운 선각자 중의 한 분이 곧 서암瑞巖 권승관權昇官 선생이다. 전북 김제 출신인 서암 선생은 한국기계공업의 선각자요 개척자라고 할 기업인이었다. 6·25전쟁 와중에 화천기공사라는 합명회사를 차려 기계공업 분야의 초석을 놓았는데, 오늘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화천貨泉그룹이 바로 그 후신이다. 서암 선생이 한국의 기계공업 육성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평가는, 정부가 그분에게 어떠한 예우를 해 드렸는가를 살펴봐도 자명해지는 일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그간 그분에게 금탑산업훈장을 포함해서 훈·포장만 여덟 번 수여했다. 이처럼 서암 선생은 한국 굴지의 저명한 기업가였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광주 지역 국악 발전의 태산북두泰山北斗였다. 광주국악진흥회 초대 이사장이라는 직함이 단적으로 증언해 주듯, 서암 선생은 당시 그곳의 뛰어난 예인들과 교유하고 후원하며 광주 지역 국악 진흥의 견인차 역할을 한결같은 열정으로 해 왔다. 나남출판사에서 나온 《기계와 함께 걸어온 외길》이라는 서암의 자서전을 보면, 당시 그분이 광주 지역에서 교유했던 국악인 중에는 훗날 서울 중앙무대로 올라와서 크게 양명揚名한 명인 명창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충만 돌이켜봐도 판소리에 임방울, 정광수, 김연수, 김소희, 박초월, 조상현 등이 있으며, 고수에는 김득수, 김명환 등이 있다. 또한 지역에서 활동하던 국악인이나 애호가들로는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의 아버지 공대일, 진도 지방의 명창 양홍도, 광주기예조합의 소리꾼 안채봉, 그밖에 박동실, 임세균, 김비현 등 뛰어난 예인들이 줄을 잇는다. 서암 선생은 국악을 사랑하며 후원하던 애호가나 독지가에만 머문 분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소리북의 달인인 명고수였다. 북장단 몇 가지 익혀 본 정도가 아니었다. 북장단의 속멋을 속속들이 터득한 경지였다. 그래서 그분의 장단에는 전통음악의 총체적 맛과 멋이 배어 있고, 소리꾼의 소리 길도 자연히 그분의 북가락을 따라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임방울 명창이 말년의 광주 공연에서 서암의 북장단을 주문했던 사실은 널리 회자되는 일화다. 또한 서암 선생은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고 널리 장학사업을 펼쳐 온 독지가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4반세기 이상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를 매년 순회하며 그곳 고려인 동포들을 위한 위문공연도 하고 한글도 가르쳐 주는 일을 해 왔으며, 그 나라 유력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양국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 무렵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한국의 광주 분들이 그곳에 와서 고려인들에게 한글도 가르쳐 주는 등 여러 가지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내심 반갑기도 놀랍기도 했다. 나만이 선각자인 양 실천해 오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지방 도시인 광주 분들이 그 같은 일에 앞장설 수 있었을까 심히 의아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웬만한 한국인들은 중앙아시아가 어디쯤 붙어 있는지도 모를 때였다. 더구나 그때는 직항로도 없어서 멀리 모스크바를 경유해야 했다. 그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광주 분들은 고생하는 핏줄들이 안됐어서 머나먼 타슈켄트까지 찾아간 것이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그 같은 미담의 주역이 곧 서암 권승관 선생이셨다. 《논어》에 ‘흥어시興於詩 입어례立於禮 성어악成於樂’이라는 말이 있다. 일언이폐지해서 서암 선생의 한평생은 일찍이 십 대 때부터 이미 기업보국企業輔國의 대망을 마음속에 새겨 분기시켰으며[興], 편법이 아닌 정도 경영에 입각해서 이상적인 기업인상을 확립했으며[立], 결국에는 조화와 균형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아우르는 음악의 속성 그대로 기업과 사회와 인생과 예술을 하나로 용융시켜 세상이 우러러 칭송하는 이상적인 인물상을 체현하며[成], 한 시대를 덕인德人이자 대인大人으로 사셨다고 하겠다. 덕 있는 부모 밑에서 효자 나듯이, 서암 선생의 덕성과 가치관을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이어받은 권영열 화천그룹 회장은 선친의 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독일, 인도 등 세계로 뻗어가는 탄탄한 중견 기업의 기틀을 다졌으니, 가문의 융성은 물론 묵묵히 기업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신실信實한 기업인의 모범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권영열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기여에도 남다른 소신이 있어서, 선친의 호를 딴 서암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전통예술의 본향이랄 전남 문화예술 발전에 각별한 애정과 열정을 쏟고 있다. 그 중의 한두 사례가 곧 이 고장의 인재들을 선별해서 장학금을 수여한다든가, 혹은 전통문화예술에 공적이 많은 호남지역 예술인을 선정하여 매년 ‘서암전통문화대상’을 시상해 오고 있는 예들이라고 하겠다. 특히 금년이 벌써 9회째인 서암상은 회를 거듭하면서 호남 예술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음으로 양으로 확실한 격려와 분발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본 연재는 이지출판사 출간 '한악계의 별들'에서 발췌하여 게재한다. 이를 허락해주신 출판사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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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밀양 백중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밀양의 대표적 문화예술이다. 매년 음력 7월 보름경에 경상남도 밀양 지방에서 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유래한 성인남녀놀이이다. 머슴들이 7월 보름경 진(辰)에 해당하는 날(용날)을 택하여 지주(地主)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서 연유한 두레굿이다. 농사일을 한고비 넘기고 난 뒤 마을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풍장을 치며 풍년 들기를 비는 고사와 위안잔치로 구성되는 한판의 마을축제 마당이다. 잡귀막이굿과 농신제로 이루어지는 유교식의 마을동제가 행해진 후, 본놀이로 작두말타기,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 등의 춤판이 벌어지고 뒤이어 마지막엔 이 놀이에 참가한 모든 구경꾼과 놀이꾼이 함께 어울려 신명 속으로 빠져드는 놀이 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놀이는 두레먹기·호미씻기[洗鋤遊 : 세서연]·호미걸이라는 명칭으로 중부이남지방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가 있다. 밀양에서는 이날을 흔히 ‘머슴 날’이라고 하며, 이날의 놀이를 ‘꼼배기참 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꼼배기참’이란 밀양 지방의 사투리로 밀을 통째로 갈아 팥을 박아 찐 떡과 밀에다 콩을 섞어 볶은 것, 그 밖에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머슴들에게 점심·저녁으로 주는 음식을 말한다. 이 ‘꼼배기참’은 자주 얻어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으로 머슴 날에는 반드시 이 음식이 나오게 되어 있으므로 ‘꼼배기참’을 먹으면서 논다는 데서 ‘꼼배기참 놀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밀양에서 백중놀이가 다른 지방에 비하여 성행하였고 그 놀이에 개성이 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지역은 농경지가 많아 농사가 잘 되고 살기가 좋았기에 촌락공동체로서의 농경의식이 발달할 수 있었다. 또한 ‘불당골’이라 불려 오던 부북면 퇴로리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살았던 사당패(광대)와 한말 때 토호나 대지주 행세를 하면서 살았던 아전(衙前)출신들의 모임인 보본계원(報本契員)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밀양은 양반과 천민의 차별이 심한 곳으로 천민들이 풍물에 의지하여 신명나게 놀면서 울분을 해소하였던 것 또한 지금의 백중놀이를 형성함에 있어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백중놀이가 벌어지게 되면 행사의 주관은 열흘 전부터 대농가의 큰 머슴들 중에서 인기가 있는 사람을 좌상(座上)과 무상(務上)으로 뽑아 일을 보게 하였다. 이렇게 뽑힌 좌상과 무상은 대농가나 그해 경사가 난 집, 또는 혼인한 집 등을 찾아다니며 술과 안주를 추렴하고, 방목(放牧)하던 소가 다른 집의 논밭에서 곡식을 뜯어먹은 적이 있는 소 임자에게서 벌금으로 돈이나 술·안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음식이 장만되면 그날 경치가 좋은 장소에 모여 하루를 마음껏 놀고 즐기게 된다.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어 서민예술의 표본이 되는 「밀양백중놀이」의 주요종목은 농신제(農神祭)·작두말타기·춤판·뒷놀이 등으로 이루어진다. 농신제는 먼저 나팔을 길게 서너 번 불면 농악이 울리면서 오방진굿을 하고 고사터를 깨끗이 하는 잡귀막이굿에서 시작된다. 마당에는 저름(쌀 창고)대로 만든 농신대[農神竿]를 세우고, 농신대를 중심으로 몇 바퀴 돈 다음 농신대를 향하여 서면 고사를 지낸다. 고사는 북을 세 번 울려 신장(神將)을 강신하게 한 뒤 축문을 읽는다. 고사가 끝나면 각자가 준비한 주머니에 쌀과 콩, 그리고 기원문을 넣어 신대에 매단다. 이어서 술과 안주를 먹으며 ‘어사영’, ‘모심기노래’ 등 밀양의 민요를 부르며 어울려 논다. 작두말타기는 머슴들 중에서 농사장원을 선정하고 그 장원을 작두말(지게목발로 만든 말)에 태워 풍물을 치면서 놀이판을 돌아 시위하는 놀이다. 작두말에는 좌상과 무상이 작은 삿갓을 뒤집어쓰고 올라타 양반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이때는 째보양반·고자양반·벙어리양반 등이 나와 양반을 욕보이는 풍자놀이를 하기도 한다. 춤판은 양반춤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머슴들이 풍물장단에 맞추어 양반을 몰아내고 각기 난쟁이·중풍잽이·배불뚝이·꼬부랑할미·떨떨이·문둥이·꼽추·히줄래기·봉사·절름발이 등의 병신춤을 추며, 이어서 범부춤과 오북춤이 추어진다. 범부춤과 오북춤은 밀양 지방에만 전승되는데, 범부춤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장구잽이 앞에서 개인기를 선보이는 춤이며, 오북춤은 다섯 사람의 북잡이들이 원무(圓舞)하거나 원심원외로 이동하면서 추는 춤이다. 이 놀이의 특징은 장식품에 있어서 농신대가 특이하고 악기는 사장고와 물장고 같은 것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병신춤은 다른 춤과는 달리 다양하고 본격적인 놀이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차별대우를 받은 상민과 천민들의 서러움이 전체놀이에 익살로 표현되어 있는 점과 춤사위가 힘차고 의젓한 ‘매김새’를 주축으로 한다는 점이다.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기예능보유자로 하보경(하보경, 보유종목 : 양반춤·법무춤)과 김상룡(김상룡, 보유종목 : 오북춤)이 인정되었으나, 1997년 하보경이 작고하여 현재는 김상룡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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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가는 밀양북춤 하보경, 하용부(밀양북춤-하용부.행사:임수정전통춤판_동동(動動). 일시: 20130604, 장소:국립국악원 우면당, 출연:하용부, 원본소장처 : artskoreatv.com) 북춤이란 주로 북을 몸에 걸치고 북을 치면서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춤으로 밀양북춤과 진도북춤이 있으며, 각 지역을 대표하여 명인 명무들이 명작무로 추는 북춤 등도 있다. 밀양북춤이 끈을 어깨에 걸어 손으로 북을 잡고 한 손으로 북을 치며 추는 춤이라면 진도북춤은 어깨와 몸에 북을 고정시켜 두 손으로 북채를 들고 추는 춤이다. 밀양백중놀이는 옛날부터 밀양에서 전래되어 오는 갖가지 민속춤인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 등을 줄거리로 한 머슴놀이의 일종이다. 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세 벌 논매기를 끝내고 칠월 백중날을 전후하여 용날[辰日]을 택해 머슴들이 풍년을 비는 뜻으로 농신農神에 대한 고사를 지낸 다음 호미씻이를 할 때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놀이이다. 따라서 밀양북춤은 다섯 사람의 춤꾼이 북을 울러 메고 나와 북춤을 추는 오북춤을 말한다. 이 중 수북(설북, 우두머리 북꾼)이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여 독립적으로 보여 주는 외북놀음(외북춤)이 있어 오늘날 홀춤으로서 밀양북춤을 연행하기도 한다. 오북춤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나와 다섯 사람이 중앙으로 모여 원이 되고 다시 원 선상으로 돌아가면서 북을 친다. 또 북잽이들은 원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자리에서 힘차게 북을 한 번 친 다음 빠른 장단으로 다섯 번 북바퀴를 치고 이어서 북 가죽을 다섯 번 치는 등 힘차고 멋있는 북가락이 이어진다. 이렇게 하여 북잽이들은 회무回舞하면서 원 밖으로 돌아오고 여기서 모든 잽이가 장단을 멈춘 가운데 북잽이들만 자진가락으로 흥을 일으킨다. 이것을 북울림이라 하는데 처음에는 북울림을 쳐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북울림을 한 다음 둥글게 돌아가며 북을 힘차게 치고 나서굿거리장단으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까치걸음, 걸어나가기 등 갖가지 허튼춤을 춘다. 다시 자진모리장단에 둥글게 돌아가며 원 안으로 향하여 힘차게 가락을 치며, 북울림을 한 다음 뒤풀이로 어울림가락을 치며 신명을 돋우고 덧배기로 돌다가 북울림을 하고 퇴장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 춤의 대표적인 춤사위는 황산학사위, 도듬새, 오른팔 날개펴기, 두루거리 변형, 자진걸음, 까치걸음, 덧배기사위, 북배김 등이 있으며, 동작 구성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첫 박에 북을 크게 치고 북채 든 팔을 옆으로 들어 올리면서 매 박자마다 걸어 나가는 춤사위. 2.첫 박에 북을 치고 오른발을 들어 주면서 제자리에 정지한 채 오른팔을 머리 위로 돌려 주는 춤사위. 3.매 박자마다 북을 치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춤사위. 4.북채로 북통을 치면서 토끼 뛰듯이 잔발뛰기를 하는 춤사위. 5.다섯 사람이 각기 북을 마주 붙이고 북을 매 박자에 5번 치고서 다시 북바퀴를 5번 친 후 자진가락으로 맺는 춤사위. 6.맺음 다음에 풀어 주는 형태로써, 오른발을 들고 뒤로 물러나오며 북채를 머리 위로 올려 매 박자마다 한번씩 돌리는 춤사위. 복식은 흰 바지저고리를 입는데,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머리에 수건을 매며 맨발로 춘다. 장단은 휘모리-자진모리-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 순으로 다양한 장단을 사용하여 신명을 돋운다. 사용 악기는 주로 타악기들로 꽹과리, 징, 장고, 북, 물장고, 사장고, 나발 등이다. 이 가운데 물장고와 사장고는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악기이다. 물장고는 입구가 넙적한 독에 물을 담고 그 위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 손으로 바가지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사장고는 장독 뚜껑 두 개를 각각 장고 가죽으로 씌우고 가운데를 나무로 틀을 짜서 간격을 맞춘 것이다. 나발은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긴 대롱의 끝에 소라고동 같은 쇠판을 벌여 놓은 모양을 한 악기이다. 밀양북춤의 대가인 하보경은 1980년에 밀양백중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면서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며 오북춤에서는 수북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하보경의 대를 이어 손자인 하용부과 제자인 김상용, 박동영 등이 전승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놀이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농악에서 추는 대북놀이에 비해 한결 즉흥적이고 어깨놀림이 유연하며 북잽이들이 원형을 이루어 춤을 추되 큰 보폭과 대담한 동작으로 남성적인 춤을 선보이면서, 간간히 북을 어르는 무태는 매우 힘이 있고 멋들어진, 독특한 멋을 자아낸다. 마치 징을 칠 때 큰소리를 내면서 파동으로 여음을 남기듯 북춤도 첫 박에 힘을 모아 튕기듯이 그 힘이 파동을 그리면서 풀어 나가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오북춤의 의미는 오행五行과 오기五氣가 순조롭고, 오체五體가 경건하며 오곡五穀이 풍성해 오복五福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행은 음양학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원기元氣를 뜻하는 것으로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의미한다. 오기는 다섯 가지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것으로 비오고, 볕 나고, 춥고, 덥고, 바람이 부는 것을 의미한다. 오체는 사람의 온몸을 의미하며 오곡은 다섯 가지 곡식으로 쌀, 보리, 조, 콩, 기장을 의미한다. 오복은 다섯 가지 복을 뜻하는 것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어진 덕을닦는 것), 고종명考終命(천명을 다 살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오북춤에서 오五의 의미는 전통적인 민간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원의 본질적인 원형은 풍작을 기원하는 신앙적 제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북춤은 휘모리장단, 굿거리장단, 자진모리장단등 세 가지 장단으로 구성되는데 춤은 엇박이 없이 철저하게 장단박자에 일치한다. 모든 춤동작이 다 크다는 점과 오른손과 오른발, 왼손과 왼발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특이하다. 어느 지점으로 한 발을 던져 동작을 맺고 제자리에서 양손으로 어깨춤을 추며 어르다가 그것을 풀어 가는 배김사위 형태가 주된 춤사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밀양북춤은, 양반들에 대한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와 익살을 부려 시름을 달래고 갖가지 개성있는 춤으로 밀양백중놀이에서 행하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즉흥성과 신명이 가장 잘 어우러진 춤이다. 참고문헌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제138호 밀양백중놀이(정병호·박진주,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6,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0), 밀양백중놀이의 춤사위(강혜숙, 한국민속학16, 한국민속학회, 1983), 부산·경남 향토무용총론(김온경, 한국평론, 1991), 한국민속무용연구(김온경, 형설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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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沈) 그린 춤 두번째이야기 10 월 9 일일 시 : 2008 년 10 월 9 일(목) 19 시 장 소 :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문 의 : 010-4166-0589 프로그램 1. 북소리(신하교 민속놀이 연주단) 북장단의 정교함과 사물놀이의 장단이 어우러져 힘이 있고 박진감이 넘치며 난타에서 연주되고 있는 자유분방함을 묘사한 창작품이며,고요함이 깃들고 천둥치고,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강렬함을 북의 소리로 표현하고,다양한 북과 북의 조화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2.궁중무 서서 추던 일무와 고려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궁중무용인 당악정재와 우리나라 춤으로 중국계 궁중무용의 양식을 도입하여 창작한 향악정재가 있으며,이 작품은 춘앵전의 동작을 사용하여 재구성한 작품으로 조선 23대 임금 순조 때 효명세자가 순종 숙황후의 40세를 경축하기 위하여 지은 곡으로 어느 봄날 버드나무에 앉은 꾀꼬리 노래를 듣고, 감동하여 효명세자가 만들었으며,이 춤을 출 때는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앵삼을 입고 궁중에서만 추는 춤으로 음악을 재편집하여 구성하였다. 3.흥 굿거리 장단으로 구성되엇으며,단아하고 기품이 넘치며 우리춤의 자유분방한 정신에서 나오는 멋과 흥을 비교적 큰 춤 동작과 상하 수직의 무릎 굴신으로 표현하였으며,즉흥 시나위의 형식으로 동작의 매력과 춤의 조화를 묘사하는 창작 작품이다. 4.승무 중요무형문화재 207호인 고성오광대 제4과정에 나오는 고성승무이며,굿거리 형식으로 되어 있고,덧배기 춤의 형식이 잘 묘사된 춤이며 고성지방의 특색 있는 동작을 바탕으로 민속 무용을 무대화하여 새롭게 재창작된 작품이다. 5.민요 6.특별공연 허튼춤 (반주 신하교 민속놀이 연주단) 밀양백중놀이는 앞 놀음, 놀음마당,신풀이 등 세 마당으로 짜여있다. 첫째 마당인 앞 놀음은 농신제로 놀이판 한가운데에 겨릎대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모인 사람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세 번 절을 하고 풍년을 비는 마당이다. 놀음마당으로 들어가면 덧배기춤으로 흥을 돋운 다음 가장 흥겹고 재미있는 병신춤이 평쳐진다. 허튼춤은 마지막 마당 신풀이에서 흥겨운 춤이다. 7.살풀이 이매방流 맺고 맺힌 것을 풀어내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을 춤으로 풀어내는 것이 살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래 흉실을 미리 피하도록 하는 무속적인 춤이였으나 이것이 후에 전통속에서 길러지고 가꾸어 지는 과정을 통해 민속춤의 하나로 발전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인 살풀이 춤이 고도로 다듬어진 전형적인 기방 예술로서 한과 신명 등을 동시에 지닌 신비한 느낌을 주는 춤이며 특히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함께 정과 한이서린 우리의 민속춤이다. 8.특별공연 소고춤 소고춤은 농악 백구놀음의 독특한 춤사위와 가락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무대화 시킨 춤이며,경쾌하고 절도 있게 몰아치는 춤사위는 굿거리,자진모리,동살풀이,휘모리 순으로 사물과 태평소 반주가 신명나는 춤을 이끄는 작품이다. 9.특별공연 북춤 범무춤,양반춤과 함께 밀양백중놀이에 나오는 춤의 하나로 커다란 북을 매고 춤을 춘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장단을 차례로 연주하는데 북장단을 지기보다는 춤사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자연스런 춤과 가락이 어우러져 생동감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10.입춤 모든 춤의 움직임을 단아하고,정갈하게 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하게 우러나오는 동작을 몸을 통하여 표현하는 춤으로 예전 권번의 춤 학습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진 춤이며 전통춤의 기본 움직임이 분위기에 따라 흥과 멋을 조율하면서 출 수 있고,즉흥성을 발휘하며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춤의 전후 순서를 바꾸어 출 수도 있고,음악도 변형 할 수 있는 작품이다 11.태평무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다.1900년대의 무용가 이며 명고수였던 한성준이 경기 무속춤을 재구성하여 추었던 춤의 하나로 알러졌고,무복의 형태가 왕과 왕비의 복장으로 궁중풍의 웅장하고 화려함을 보여주며,장단의 변화와 함께 겹걸음,잔걸음,무릎 들어 걷기,뒷꿈치 꺽기 등 기교적인 발 디딤새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보여주며,이 춤은 우리나라 춤 중에서 가장 기교적인 발짓춤이라 할 수 있는 공연 예술로서 민속춤이 지닌 특징을 잘 표현해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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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풍류 한마당 5~8무제 문서 일요 풍류 한마당 5~8 일시 : 매주 일 요일 오후 3시 장소 : 전주전통문화센터 놀이마당 일요 풍류 한마당 5 2005년 4월 3(일) 밀양백중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일요 풍류 한마당 6 2005년 4월 10(일) 줄타기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일요 풍류 한마당 7 2005년 4월 17(일) 진도다시래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일요 풍류 한마당 8 2005년 4월 24(일) 남사당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올해 두 번째로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마련한 ‘4월 일요 풍류 한마당'은 중요무형문화재에서 놀이와 연극으로 지정된 종목들로 꾸며집니다. 는 ‘놀'이니 ‘놀음놀이'의 준말로 일하는 것이 아닌 즐겁게 노는 것을 말하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들은 주로 가면극과 꼭두극이 주종으로 문자기록에 의하지 않은 구비문학의 희곡을 갖고 음악무용의 가무적 부분과 언어와 연기의 연극적 부분으로 조화된 민속극으로 구성된 것을 말합니다. 이번 센터 놀이마당에서 선보이는 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밀양백중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줄타기',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를, 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제81호로 지정된 ‘진도다시래기'를 마련합니다. 3일에 선보이는 ‘밀양백중놀이'는 밀양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놀이로 음력 7월 15일 백중에 농민들 이 바쁜 논매기를 마치고 잠시 쉴 참에 호미를 씻어 걸어 놓고 노는, 농민들이 가장 즐기는 놀이입니다. 다양한 춤과 특히 오복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이 놀이의 격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10일에 선보이는 ‘줄타기'는 줄곡예, 재담으로 엮어지는 광대놀이로서 주로 단오․한가위 등의 명절에 행해졌던 놀이로, 줄 위에서 걷기․뒤로 걸어가기․걸터앉고 드러눕기 등 다양한 기교와 함께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어 관람객을 웃게 만들어 줍니다. 17일에는 선보이는 ‘진도다시래기'는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초상일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전문예능인들을 불러 함께 잠을 지새우면서 노는 민속극적 성격이 짙은 상여놀이입니다. 24일에 선보이는 ‘남사당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의 여섯가지 놀이를 마당에서 펼치는 것으로 남사당패에 의해 짜여진 규모가 큰 놀이입니다. 풍물과 같은 음악과 탈놀이인 덧뵈기, 인형놀이인 꼭두각시놀음 등이 있어 단순히 놀이종목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주로 옛 남사당패의 후예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번 ‘일요 풍류 한마당'을 통해 옛 선조들이 즐겼던 놀이와 민속극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연시각은 계절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되며, 공연은 1시간정도 진행됩니다. 우천시에는 한벽극장에서 공연을 진행합니다. 4. 3(일) 밀양백중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경 용날을 선택하여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를 말한다. 이러한 놀이는 호미씻기라 해서 벼농사를 주로 했던 중부 이남지방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부른다. 밀양백중놀이는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놀이 등으로 짜여져 진행된다. 농악을 치며 오방진굿으로 농신제가 시작되면 마당에는 삼대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새끼를 꼬아서 만든 용을 매단다. 농신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서서 세번 절을 하고 엎드려 복을 비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축문을 읽는다. 작두말타기는 머슴들 가운데 농사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 지게목발로 만든 작두말에 태워 놀이판을 돌면서 농악으로 흥을 돋우어 시위하는 놀이이다. 춤판은 양반춤으로 시작되는데 장단에 맞추어 양반답게 느릿하게 추고 있으면, 머슴들이 양반을 몰아내고 난쟁이, 중풍장이, 배불뚝이, 꼬부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익살스러운 병신춤을 춘다. 이어서 범부춤과 오북춤을 추는데 범부춤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장고잽이 앞에서 재주를 보인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 안과 밖으로 이동하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라 할 수 있다. 뒷놀이는 모든 놀이꾼들이 화목의 뜻으로 다같이 어울려 추는 춤으로 장단가락도 자주 바뀌면서 제각기 개성적이거나 즉흥적인 춤으로 꾸며진다. 4. 10(일) 줄타기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벌이는 놀음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지치듯 미끌어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한다. 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삼현육각잡이로 편성된다. 줄광대는 주로 줄 위에서 놀고 어릿광대는 땅 위에 서서 재담을 하며 삼현육각잡이는 줄 밑 한편에 한 줄로 늘어앉는다. 줄을 탈 때에는 아래에 있는 잽이들이 장구, 피리, 해금 등으로 흥을 돋우어 광대들의 동작을 율동적이고 날렵하게 만들었다. 줄타기의 기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여 가지로, 줄 위에서 걷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며 뒤로 걸어가기, 줄 위에서 한 발로 뛰기, 걸터앉고 드러눕기도 하며 때로는 재주를 넘고 떨어지는 척 해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한다. 줄타기를 할 때에는 단순히 줄만 타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파계승과 타락한 양반을 풍자한 이야기로 익살을 떨고, 바보짓이나 곱추짓,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들을 흉내내 구경꾼들을 웃겼다. 4. 17(일) 진도다시래기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는 진도지방에서 초상이 났을 때, 특히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초상일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전문예능인들을 불러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노는 민속극적 성격이 짙은 상여놀이이다. 전체 다섯마당으로 구성되는데, 첫째마당은 가상제놀이로 가짜 상제가 나와 상여꾼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다. 둘째마당은 봉사인 거사와 사당 그리고 중이 나와 노는데, 진도다시래기의 중심굿으로 민속가면극에서의 파계승 마당에 해당된다. 셋째마당은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만가를 부르는데 다른 지역의 상여소리와 달리 씻김굿의 무당노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넷째마당은 묘를 쓰며 부르는 가래소리를 하면서 흙을 파는 시늉을 한다. 다섯째마당은 여흥놀이로 이어져 예능인들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진도다시래기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장례 때 무당단체인 신청(神廳)을 중심으로 조직된 당골 전문예능인들에 의해 전승된 민속극으로 장례풍속과 민속극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4. 24(일) 남사당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연예인인 남사당패가 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조선 후기부터 1920년대까지 행했던 놀이이다. 남사당놀이는 서민사회에서 자연 발생한 민중놀이로, 양반들로부터 박대를 당해 마을에서 공연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남사당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이루어진다. 풍물은 일종의 농악놀이로 공연 시작을 알리면서 구경꾼을 유도하기 위한 놀이라 볼 수 있다. 버나는 일봉의 접시돌리기로 쳇바퀴나 대접 등을 막대기나 담뱃대 등으로 돌리는 묘기이다. 살판은 오늘날의 덤블링(재주넘기)과 같은 땅재주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름은 줄타기 곡예를 이르는 말로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것만큼 어렵다 하여 남사당패내에서만 쓰여지던 말이었으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탈놀이이다. 인형극을 이르는 덜미는 인형극에 나오는 중요등장인물에 따라 꼭두각시놀음, 박첨지놀음, 홍동지놀음이라고 부른다. 특히 꼭두각시놀음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통인형극이 남사당놀이밖에 없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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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춤의 향기속으로 ...공연 기간 : 2005년 2월 25일(금) ~ 26일(토) 공연 시간 : 금/19:30, 토/19:00 공연 장소 :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 공연 문의 : 610-2222 우리 춤의 향기속으로 ... 해설이 있는 우리 춤 설한풍의 매화처럼 가슴 속에 잔잔히 흐르는 우리 춤의 향기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2005년을 함께할 수 있다. 우리춤을 해설하고 그 춤을 보여주며 3인의 여성무용가와 1인의 남성무용가가 한국춤의 다양함을 표현한다. 우리 춤 스타들이 펼치는 4인 4색의 시적 춤사위가 우리의 일상을 아름답게 꾸며줄 것이다. 희망찬 봄맞이의 기쁨을 우리 춤에 가득 담아 이 무대를 마련한다. 프로그램 - 1부 - 태평무(임현선) 산조춤(정은혜) 진도북춤(황희연) - 2부 - 부채춤(정은혜) 산조춤 (황희연) 춘앵전(임현선) 밀양북춤(하용부) 출 연 진 - 장승헌/해설 - 무용평론가, 공연기획 MCT 대표 - 정은혜/부채춤, 산조춤 - 충남대 교수 - 임현선/태평무, 춘앵전 - 대전대 교수 - 황희연/진도북춤, 산조춤 - 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장 - 하용부/밀양북춤 -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자 공연설명 태평무 태평무는 왕십리 당굿의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하여 무대 춤으로 구성한 것으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춤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주음악은 무속장단으로 진쇠장단을 비롯하여 낙궁, 터벌임, 도살풀이 등의 가락으로 되어있다. 장단이 복잡하여 가락(음악)을 알지 못하고는 춤을 출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적인 춤으로 동작이 섬세하고 우아하며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어 우리 민속춤이 지닌 정·중·동의 멋과 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발디딤이 다양하고 발을 구르는 동작은 이 춤만이 가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태평무의 내용은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복하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춤은 다른 민속춤에 비해 춤사위가 퍽 특이하고 개성적이며 예술성이 높다. 태평무의 복식은 조선 궁중왕비의 의상으로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산조춤 산조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허튼가락으로 출발한다. 산조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 느린데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빨라지는 형태를 갖고 있는데 이와 같이 느림, 보통, 빠름의 속도 대비는 전통음악의 전 분야에 걸쳐 있는 것으로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춤 대부분이 장고나 부채, 수건 등의 소품을 이용하지만 산조춤은 일체의 소품이 없이 조짜임이 있는 가락을 몸동작인 춤으로만 표현하는 우리 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정은혜의 산조춤은 김천흥, 한영숙, 최현, 김백봉으로부터 이어 받은 다양한 춤형태가 습합되어 나타나 있다. 격조 있는 단아함과 흥과 멋이 어우러지면서 활달한 공간미가 살아나는 춤에 남도태생인 정은혜의 예술혼이 부각되면서 그녀의 삶의 의미가 함축된 새로운 춤의 언어이다. 진도북춤 전남 진도는 우리나라 민족춤의 보고라 불릴 만큼 다양한 춤들이 전승, 보전되어오고 있다. 원래 농악의 한 부분으로 공연되어오던 이 북춤은 인간문화재 박병천 선생이 다양하고 새롭게 안무한 작품이다. 다른 지역의 북춤이 북채 하나만을 사용하지만 진도에서는 양채북으로 양쪽을 두들겨서 효과가 한층 더한다. 남성적인 활달한 진도북춤을 여성무용수에 의해 재현하였다. 부채춤 부채는 한국의 정서를 보여주는 소도구로서 쉴새 없이 펴고 접는 가운데 보여 지는 춤사위는 향토적 정취를 풍긴다. 부채는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며 예술과 자연, 빛과 어둠, 존재와 소멸의 극치를 보여주고 한국춤의 멋의 근원인 품격과 유연함이 부각되는 미래의 한국 전통춤이다. 산조춤 산조는 삼남지방에서 성행하였고 특히 전라도에서 발달하였는데,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의 선율악기를 장고반주에 곁들여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악독주곡의 한 형태이다. 무속음악인 시나위와 민간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민간에서 발전시킨 음악장르로서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시작하였다가 점차 급한 중모리 · 자진모리 · 휘모리로 바뀌어 간다. 무용 산조는 신무용기에 성립되었으며 배명균류 산조는 禮와 道를 지키는 곧은 의식을 바탕으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황희연의 산조는 명인 김영재(신쾌동류 거문고 산조 무형문화재 16호 보유자)의 해금산조와 어우러져 풍류와 멋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그려낸다. 춘앵전 이조순조(李朝純祖) 때 효명세자가 순원숙황후의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이른 봄날 아침에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를 듣고 이를 상징하여 무용화한 것이다. 꾀꼬리 빛을 상징하는 노란 앵삼을 입고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르며 5색 한삼을 손목에 끼고 오색으로 장식된 화관을 머리에 얹고 화문석(花紋席) 위에서 추는 독무로 청아하고 단정한 향악정재(鄕樂呈才)이다. 밀양북춤 밀양북춤은 경상도 밀양에서 전해지는 밀양백중놀이에서 연행되는 북춤을 말한다. 밀양백중놀이는 농촌에서 세벌 논매기를 끝내고 백중날(음력 7월15일)을 전후하여 간지(干支)의 지지(地支)가 용에 해당하는 용(辰)의 날을 택해 머슴들이 풍년을 비는 뜻에서 농신(農神)에 대한 고사를 지내고 호미씻이를 할 때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려 온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날이 되면 머슴을 둔 대농가를 비롯하여 각 집을 다니면서 술과 음식을 거두어 정해진 장소에 모여 여러 가지 춤과 놀이, 씨름, 힘자랑(들돌들기) 등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밀양백중놀이의 춤은 양반춤, 병신춤, 범부춤, 오북춤이 있는데, 일반 민중들이 양반들에게 풍자와 익살을 부려 시름을 달래는 과정이 갖가지 춤으로 나타나고 각기 독특한 춤사위를 가졌다는 특징이 있다. 국악무용반주팀 피리, 대금, 해금, 장고, 북, 가야금, 아쟁, 자라, 징, 꽹과리로 구성된 국악 무용반주팀의 반주로 공연의 현장감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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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 별세 향년 88세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김상용(金尙龍, 향년 88세) 씨가 지난 5월 3일(월), 오전 6시 경에 밀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여 경남 밀양시 부북면 월산리 선영에 묻혔다. 김 옹은 1935년에 밀양백중놀이보존회 전신인 ‘밀양보본계’ 회원으로서 故 하보경 선생께 병신춤 등 밀양백중놀이 전수 받았으며 1970년에 한국국악협회 밀양시지부 지부장(17대) 역임했다. 1981년 10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됐고 1987년 7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오북춤)로 인정받았다. 가족사항으로는 부인과 5남 3녀를 두었다. 밀양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낸 농사꾼들이 음력 7월 15일경 지주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로서, 농사일에 직접 종사하는 농사꾼들의 어려운 농업노동이 전체 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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